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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2 상실의 시대 by soul
  2. 2008.08.07 인간 실격 by soul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럼 이상이랄까, 그런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 말인가요?"
 "물론 없지"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인생엔 그런 건 필요 없어. 필요한 건 이상이 아니라 바로 행동 규범이야."

………

 "그런데 선배님, 대체 선배님이 말한 그 인생의 행동 규범이란 어떤 거죠?"
 "넌 분명히 웃을 거야."
 "웃긴 왜 웃어요!"
 "신사일 것, 바로 그거야!"
 난 웃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산사라니, 신사숙녀, 할 때의 그 '신사'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그 신사야."
 "그럼 신사일 것이란 말은 어떤 의민가요? 혹시 정의가 있다면 어떤 건지 가르쳐 주지 않겠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야."
 "선배님은 내가 지금껏 만난 분 중에 가장 색다른 분이에요."
 "너는 내가 지금껏 만난 인간 중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야."




 "부자의 최대 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가령 내가 반 친구한테 뭘 좀 하자고 하면 상대는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나 지금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그런데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 하게 돼. 내가 가령 지금 돈이 없어 그런다면, 그건 정말 돈이 없다는 소리니까. 비참할 뿐이지. 예쁜 여자가 '나 오늘은 얼굴이 엉망이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같거든. 못생긴 여자가 그런 소릴 해봐,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그런 게 내 세계였던 거야. 지난해까지 6년 간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유유정 옮김,『상실의 시대』,문학사상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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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ul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 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大洋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영에 겁먹는 데서 다소 해방되어 이것저것 한도 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 말하자면 필요에 따라 얼마간은 뻔뻔하게 행동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

 세상이라는 곳이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니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여태까지 저의 공포란, 봄바람에는 백일해를 일으키는 세균이 몇십만 마리, 목욕탕에는 눈을 멀게 하는 세균이 몇십만 마리, 이발소에는 대머리로 만드는 병균이 몇십만 마리, 전철 손잡이에는 옴벌레가 우글우글, 또 생선회, 덜 익힌 쇠고기와 돼지고기에는 촌충의 유충이나 디스토마나 뭔가의 알 따위가 틀림없이 숨어 있고, 또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에 작은 유리 파편이 박혀서 그게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눈알에 박혀서 실명하는 일도 있다는 등의 소위 '과학적 미신'에 겁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얘기였던 겁니다. 그야 분명히 몇십만이나 되는 세균이 돌아다니고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정확한 사실이겠죠. 그러나 동시에 그 존재를 완전히 묵살해 버리기만 하면 그것은 저와 전혀 상관없는, 금방 사라져버리는 '과학의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시락 통에 먹다 남긴 밥알 세 알. 천만 명이 하루에 세 알씩만 남겨도 쌀 몇섬이 없어지는 셈이 된다든가 혹은 하루에 휴지 한 장 절약하기를 천만 명이 실천하면 얼마만큼 펄프가 정약된다는 따위의 '과학적 통계'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위협을 느끼고, 밥알 한 알 남길 때마다 또 코를 풀 때마다 산더니 같은 쌀과 산더니 같은 펄프를 낭비하는 듯한 착각 때문에 괴로워하고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어두운 마음을 가져야만 했는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과학의 거짓', '통계의 거직'이며 밥알 세 알을 정말로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곱셈 또는 나눗셈 응용 문제라고 쳐도 정말이지 원시적이고 저능한 테마로서 전등을 안 켠 어두운 화장실에서 사람들은 몇 번쯤 발을 헛디뎌서 변기 구멍 속으로 떨어질까 혹은 전차 문과 플랫폼 사이의 틈새에 승객 중 몇 명이 발을 빠뜨릴까 같은 확률을 계산하는 것만큼 황당한 얘기인 것 입니다. 그런 일은 정말 있을 듯하지만 제대로 발을 걸치지 못해서 화장실 구먼에 빠져 다쳤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없고, 그런 가설을 '과학적 사실'이라 배우고 현실로 받아들여서 두려워하던 어제까지의 저 자신이 애처로워서 웃고 싶어졌을 만큼 저도 세상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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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