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럼 이상이랄까, 그런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 말인가요?"
 "물론 없지"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인생엔 그런 건 필요 없어. 필요한 건 이상이 아니라 바로 행동 규범이야."

………

 "그런데 선배님, 대체 선배님이 말한 그 인생의 행동 규범이란 어떤 거죠?"
 "넌 분명히 웃을 거야."
 "웃긴 왜 웃어요!"
 "신사일 것, 바로 그거야!"
 난 웃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산사라니, 신사숙녀, 할 때의 그 '신사'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그 신사야."
 "그럼 신사일 것이란 말은 어떤 의민가요? 혹시 정의가 있다면 어떤 건지 가르쳐 주지 않겠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야."
 "선배님은 내가 지금껏 만난 분 중에 가장 색다른 분이에요."
 "너는 내가 지금껏 만난 인간 중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야."




 "부자의 최대 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가령 내가 반 친구한테 뭘 좀 하자고 하면 상대는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나 지금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그런데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 하게 돼. 내가 가령 지금 돈이 없어 그런다면, 그건 정말 돈이 없다는 소리니까. 비참할 뿐이지. 예쁜 여자가 '나 오늘은 얼굴이 엉망이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같거든. 못생긴 여자가 그런 소릴 해봐,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그런 게 내 세계였던 거야. 지난해까지 6년 간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유유정 옮김,『상실의 시대』,문학사상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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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