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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Lévi-Strauss

Papers/etc : 2009. 5. 5. 15:24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Claude Lévi-Strauss, 1908.11.28~]



김 솔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 이후, 언어학에만 국한되었던 구조주의를 다른 문화연구(인류학)에 이끌어 오는데 큰 기여를 했다.


1. 사상과 이론의 배경


   ○레비-스트로스 스스로 말하는 세 스승


   레비-스트로스는 자기 삶의 일부를 자전적으로 쓴 책인 『슬픈 열대』에서 자신의 사유세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세 가지 큰 요소로서
지질학,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그리고 마르크스사상을 꼽으며 그것들을 ‘나의 세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지질학의 원리를 통해 레비-스트로스는 겉모습으로 사물을 판단하거나 이해하기보다 밑에 깔려 있는 진실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유의 원칙을 터득하게 되었다. 변화 있는 지대의 신비로움 뒤에는 그런 현상을 낳고 지탱해 주는 어떤 지질학적 법칙이 있듯이 변화무쌍한 사물들의 겉모습 뒤에는 그것을 설명해 주는 어떤 원리가 숨어 있다고 느꼈다.

레비-스트로스는 프로이트 이론을 접하면서도 지질학의 원리와 비슷한 어떤 것을 느꼈다고 한다. 꿈이나 히스테리 등 사람들의 정신활동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겉모습 자체만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보다 더 근본적인 마음의 흐름을 뜯어보는 것이 정신분석학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또한 젊은 시절에 그가 심취했던 마르크스이론에서도 지질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느끼던 비슷한 것을 느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그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진리를 파헤쳐 알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모순을 발견하고 온갖 이데올로기의 위장을 벗겨 내며 원초적 인간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이론에서는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을 다른 차원으로 돌려 생각함으로써 보다 더 깊이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야콥슨과의 만남

  
   뉴욕 망명시절에 알게 된 구조주의 언어학자 야콥슨[각주:1]을 사귀면서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이 추구하던 학문적 방향이 바로 구조주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이 전파시켜 나간 구조주의의 파장은 현대사상의 패러다임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뉴욕에서 야콥슨과 만나 지적 교류를 나누는 동안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이 언어에 대해서 말하는 구조적 원칙들이 결혼규칙을 비롯한 친족체계, 나아가 사회의 삶 전반에 대해 자신이 그 때까지 어렴풋이 느끼던 것과 맞먹는다고 믿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사유의 방향이 바로 구조언어학의 원리와 상통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쏘쉬르의 유산

 
   레비-스트로스가 야콥슨에게서 받은 영향은 사실 따지고 보면 쏘쉬르[각주:2]의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구조주의의 뿌리를 찾자면 그것은 쏘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일반언어학 강의』에는 기존의 언어연구 방법과 매우 다른 언어이론이 들어 있는데, 그 내용의 새로움은 아주 획기적인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쏘쉬르 이론에 담긴 인식론과 방법론을 묶어서 ‘구조주의’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반언어학 강의』에 흐르는 구조주의 사상은 그 때까지 주류를 지키던 역사주의 논리에 비판적이었다. 특히 ‘비교문법’[각주:3]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역사주의 방법론에 대해 강력한 반론을 담고 있다. 비교문법은 뿌리가 비슷한 언어들의 옛 모습을 추적하여 서로 얼마나 가깝고 어떻게 갈라지게 되었는가의 문제 등을 다뤘다. 이러한 비교문법의 배경에는 당시 19세기를 풍미하던 역사주의 사상의 저변이 있었다. 헤겔의 변증법 등의 영향으로 역사는 일정한 단계를 밟아 발전한다든가, 역사의 주체는 사람이라든가, 어떤 대상의 상태를 규정하는 것은 그것의 과거, 즉 역사라든가 하는 사고가 널리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쏘쉬르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대상을 결정짓는 요인은 그것의 개별적 과거사보다는 주어진 시점에서 그것을 둘러싼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라는 것이었다.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는 그것 하나만 따로 놓고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되는 다른 것들과 함께 놓고 상관관계를 통해 살펴봄으로써 더 본질적인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구성요소들은 개별적으로 고립되면 큰 의미가 없고 다른 것들과 함께 어울릴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언어체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하나하나의 언어요소에 뿌리를 두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도 아니며, 언어의 변화는 꼭 발전이니 퇴보니 하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는 인식이 쏘쉬르의 이론에 스며있다. 야콥슨을 거쳐 소쉬르와 접하게 된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이론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응용하며 깊은 고리를 맺어 갔다.





   2. 구조와 구조주의


   구조주의에서 “구조(structure)”는 관계의 체계이며, 통시적(diachronic)이기보다는 공시적(synchronic) 특성을 지닌다.

‘구조’개념을 모든 인식의 중심에 두는 것이 바로 구조주의이다. 어떤 대상을 고립시켜 인식하지 않고 그것과 관련되는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를 통해 총체적으로 인식하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 사유방식과 크게 다른 것이다.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전통적으로는 주어진 문제요소를 개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었다. 문제의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경험적으로 관찰된 자료를 중심으로 귀납하거나 이성적으로 추리된 내용을 중심으로 연역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겼다.

연구대상에 대한 착상이나 판단과 추론 등은 전적으로 분석주체의 사유작용에 따르는 것이었다.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분석대상들이 각각 분석주체와 독대(獨對)하며, 분석의 모든 가능성과 책임은 전적으로 분석주체인 개개의 인간에 귀속했다.

이런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나름대로 기여한 바도 없지 않지만 단선적인 논증을 지루하게 반복함으로써 답보상태에 빠지는 한계를 노정했다. 또한 분석주체인 사람의 과학적 책임과 주권에 대한 신뢰의 한계도 노출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고법을 추구한 것이 바로 구조주의다. 언어기호를 비롯한 모든 존재들의 세계에서 보다 더 복잡한 현실을 발견한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또는 개별적 근거에서 정체성과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복잡한 관계를 바탕으로 담보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어떤 존재의 인식에는 언제나 구조가 선행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체에 앞서 구조가 먼저 존재하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근대의 역사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전통적으로 역사주의는 헤겔식의 관념적 변증법에 따라 역사는 일정한 목적을 향해 발전한다는 인식을 깔고 있었으며, 언어과학에서는 유기체론자들과 함께 형성된 비교문법의 흐름이 이른바 ‘소장문법학파’로 이어지면서 일정한 진화법칙에 따라 맺어진 친연관계를 바탕으로 언어계통을 추적하여 옛 언어를 재구(再構)해 내려는 방법으로 나타났다. 구조주의는 이러한 역사의 규칙성을 의심하는 반면 구조적 변수들의 작용, 갈등 등에 따라 예측불허로 변동할지 모른다는 역사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깔고 있다. 결국 비과학적 우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목적론적으로 통시적 시간 축에서 역사를 추적하기보다는 어떤 대상이든 공시적 구조를 먼저 밝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에 불신의 뿌리를 둔 구조주의는 ‘비교문법’이라는 역사주의적 언어연구 관행에 직면하여 구조적 문제가 고려되지 않은 개별적 사실들의 역사는 주어진 대상의 본질적 문제를 밝혀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렇게 기존 사고의 극복을 시도하는 구조주의는 대상을 단선적으로 파편화하거나 고립시키지 않고 같은 영역에 속하는 모든 요소들을 하나의 전체로 보고 그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려 총체적 체계를 이루면서 모든 단위체의 가치를 산출하느냐에 관심을 집중한다. 개체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단지 구조의 구성요소로서만 가치를 지닌다.

단자론적 개별성, 비교론적 역사성, 인본적 주관성, 화용적 지시성 등을 뛰어넘어 대상세계의 독립된 총체적 체계에서 모든 존재가치를 규명하려는 구조주의는 이제 구조를 자율적으로 독립시켜 모든 관심의 초점을 그 안으로 집중한다. 구조적 요소들은 그들만의 관계로 맺어진 하나의 자율적 전체를 이루며 자신들의 모든 문제들을 스스로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구조주의 방법론은 언어학의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기호학’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언어학에서 말하는 ‘구조’의 개념은 매우 과학적 인상을 주었다. 인접 분야의 학자들이 구조언어학의 교훈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름대로 수용해 보려고 애썼다. 전체와 부분 그리고 부분과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엄밀하게 체계화하고 수량화까지 할 수 있는 ‘구조’개념은 기존 사상의 권태로운 흐름에서 벗어날 좋은 소재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앞 다퉈 구조 개념을 차용하여 각자의 영역 특성에 맞게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구조주의는 언어학의 좁은 울타리를 헐고 범학문적 지평으로 발길을 넓혀 갔다.

구조주의를 언어학 밖으로 확산시키는데 가장 앞장섰던 레비-스트로스는 언어이론 가운데서도 특히 음운론의 방법론을 자기 이론의 전범으로 삼았다. 구조언어학에서 큰 성과를 올린 음운이론을 인류학에 거의 그대로 연장해서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것을 ‘신화’, ‘결혼제도’, ‘친족관계’, ‘토템’, ‘예술’ 등의 문화 분석에 응용하여 일종의 인류학적 음운론을 설계하였다. 그리하여 표면적으로 경험하는 구체적 사회현상에서 껍질을 이루며 달라붙어 착시(錯視)효과를 일으키는 영상들을 뛰어넘어 개념적으로 추상화하는 일을 강조한다. 진정한 실재는 겉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존과 절연하고 객관적 종합을 통해 추상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주경복,『레비스트로스』, 건국대학교출판부, 1996.

고봉만,「레비스트로스의 미학에 관한 연구」, 충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05.

박정호 외,『현대 철학의 흐름』, 8장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동녘,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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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oman Jakobson, 1896.10.11~1982. 러시아 출신의 미국 언어학자로 프라하학파의 창시자가 되었다. [본문으로]
  2. Ferdinand de Saussure, 1857.11.26~ 1913.2.22. 스위스의 언어학자로 근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조로 불린다. [본문으로]
  3. 친족 관계에 있는 언어 상호 간의 문법적 사실을 비교 연구 하여 공통 조어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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