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배리석불입상(慶州拜里石佛立像)
보물 제63호

김 솔


 포석정(鮑石亭)에서 삼릉(三陵)입구 사이에 삼불사(三佛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이 선방골(禪房谷)이다. 이 골짜기는 서남산 골짜기 중에서 계곡의 길이가 짧은 곳 가운데 하나이지만 삼체석불입상(三體石佛立像)이 있어서 많이 알려진 곳이다. 삼체석불입상이 자리잡고 있는 제1사지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탑지명에 의하면 선방사(禪房寺)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동시에 선방곡(禪房谷)이라는 계곡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사된 사지(寺址)는 3개소이고 불상(佛像)은 삼체석불 이외에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과 최근에 발견된 선각여래입상(線刻如來立像)이 자리하고 있다.


삼존석불(三尊石佛)

 지금은 10여 년 전에 지어진 보호각 안에 서 있다.

 이 불상들은 선방사지에 넘어져 흩어져 있던 노천불(露天佛)을 1923년 다시 세워 놓은 것이다. 1945년에 간행한 <경주 남산의 불적(慶州 南山의 佛蹟)>에 의하면 1923년에 조사할 때까지 삼체석불은 제각각의 위치에 누워있었다 한다. 옛날 터전이었다고 생각하는 법당 터에 다시 세웠는데 법당 자리는 이미 심히 교란되어서 제 모습 찾아 재현하가 어려웠다. 보호각은 신식의 목조로 지은 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기와 지붕을 하고 있다. 기둥 칸 사이에 벽을 치지 않고 다 개방되어있다.

 중앙의 본존상은 큼직한 돌을 평평하게 다듬고 앞면을 부조(浮彫) 형식으로 조각한 우람한 체구로서, 커다란 자연석 위에 묵중하게 서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사등신(四等身)의 동자형(童子形)이다. 머리카락은 나발(螺髮)이며 육계가 3단으로 된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 얼굴은 사각형으로서 뺨을 부풀게 하고 턱은 완강하게 처리하여 힘과 활력을 나타내었다. 눈은 눈두덩을 부풀게 하고 눈을 가늘게 처리함으로써 눈웃음을 짓게 하였으며, 양쪽 뺨을 한껏 부풀게 하고 입을 꾹 다물면서 양가를 깊게 파서 미소가 얼굴 가득히 흘러넘치게 하였다. 코는 큼직한 삼각형이며 귀는 어깨에 닿고 있지만 끝이 깨어져 형태가 분명하지 못하다. 목은 짧은 편으로 삼도(三道)[각주:1]의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상체는 우람한 면을 과시하지만 하체는 불분명한 다리의 윤곽 등으로 빈약하게 보여 불균형을 이룬다. 어깨의 팽팽한 윤곽 외에 가슴 등은 평평하며 다리의 볼륨이 약간 표현된 것은 주목된다. 시무외ㆍ여원인(施無畏[각주:2]ㆍ與願印[각주:3]을 한 두 손은 적당한 크기이다.

 법의(法衣)는 통견의(通肩衣)[각주:4]를 입고 있는데, 오른쪽 어깨로 가사 자락을 약간 덮고 있고 팔에 걸친 옷자락도 짧고 묵중하게 내렸으며, 그 밑으로 광배에 해당하는 면 전체에 걸쳐 옷자락이 덮어져 내려갔다. 가슴에서 발목까지는 U자형의 옷주름 다섯 가닥이 표현되었는데, 모습은 굵은 요철형의 띠로서 매우 특징적인 것이다.

 우협시는 두광에 화문대와 화불을 조각하였고, 짧은 목걸이와 발목까지 화려하고 무거운 목걸이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 앳된 미소, 통통한 얼굴과 손, 팔 등은 역시 아이 같은 모습으로 다른 두 상에 비하여 세부표현이 매우 입체적이다.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긴 목걸이를 쥐고 있고, 왼손은 연꽃봉오리를 쥐고 있다. 양감(量感)있고 탄력적인 얼굴, 순진무구한 미소, 짧은 체구, 묵중하고 장식적인 목걸이 등의 장신구, 5구의 화불(化佛)이 새겨진 원형(圓形)의 두광(頭光), 앙련(仰蓮)[각주:5][각주:6]과 복련(覆蓮)[각주:7]이 새겨진 묵중한 대좌(臺座)등에서 기본적으로 본존불상과 동일한 형태인데 그 보다는 좀 더 장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좌협시(左脇侍)는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옷주름은 거의 생략되어 있으며, 두광에는 아무 장식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하여 좌협시의 복잡하고 화려한 보살상과 대조적이다. 네모난 바위 위에 서서 오른손은 설법인(說法印)[각주:8]으로 가슴에 들고 왼손은 아래로 드리운 채 정병(淨甁)을 쥐고 있다.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觀音菩薩)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크기는 본존불상 높이 278cmㆍ좌협시보살상 높이 235cmㆍ우협시보살상 292cm이다.


 



<배리석불입상을 통해 알아본 불상 양식의 흐름>

7세기에 들어서면 신라조각에서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게 된다. 지금까지의 불상들과는 달리 어린아이 같은 신체비례에 통통한 얼굴을 가진 불상들이 제작되었는데, 이 시기에 신라 불교 조각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것은 7세기 초에 중국 수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귀국한 월광(月光)스님을 비롯한 유학승들이 가져온 중국불상을 통해 새로운 양식이 신라(新羅)에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수(隋)의 조각은 지역적으로 북주(北周)의 조각전통을 계승하였는데 여기에 북제(北齊)와 남조(南朝)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발전했다. 북주조각을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양식이 바로 아동의 신체 및 얼굴 모습과 흡사한 불상양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불상으로 경주 배리의 선방사라고 전하는 절터에서 발견된 삼존불입상(三尊佛立像)을 꼽을 수 있다. 4등신 가량의 신체비례나 동글동글한 입체미가 강한 조형감, 형태면에서 단순해지고 묵중해진 본존상의 오른쪽 어께위에 대의 끝단이 살짝 걸쳐진 표현은 편삼(偏衫)[각주:9]이라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6세기에 남북조 조각에서 널리 유행하였고 백제시대의 불상인 예산 사방불(四方佛)과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石佛坐像)에서도 보인다.


 

 

<참고문헌>

 

방홍국,『신라의 마음 경주 남산』, 한길아트, 2002.

신영훈,『경주 남산』, 조선일보사, 1999.

윤경렬 『경주 남산(둘)』, 대원사, 1989.
최성은,『석불 돌에 새긴 정토의 꿈』, 한길아트, 2003.


國立文化財硏究所,「慶州南山의 佛敎遺蹟 2」-西南山 寺址調査報告書-, 1997.

國立文化財硏究所,「慶州南山-精密學術調査報告書」,경주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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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수행단계를 이르는 용어. 불교의 이상을 실현하는 세 가지 과정인 견도(見道)·수도(修道)·무학도(無學道)를 말한다. [본문으로]
  2. 시무외인(施無畏印): 이포외인(離怖畏印)이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중생에게 무외(無畏)를 베풀어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대자의 덕을 보이는 인상이다. 손의 모습은 오른손을 꺾어 어깨높이까지 올리고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한 형태이다. 나를 믿으면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여원인(與願印)과 함께 한국 삼국 시대의 불상에서 그 종류와 관계없이 모두 취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래서 이 둘을 통인(通印)이라 한다. 여원인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이 수인을 한 때와 장소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불상이 이 수인을 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장소, 어떤 의미를 나타낸 것인지 확실치 않다. [본문으로]
  3. 왼팔을 길게 아래로 늘어뜨리고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때 마지막 두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불상이 많다.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는 시무외인과 반대되는 형상인데, 대개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왼손은 여원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본문으로]
  4. 옷 모양새 가운데 양 어깨를 모두 덮은 경우를 이른다. [본문으로]
  5. 연꽃 따위가 위로 향한 모양(模樣). 또는 그 무늬 [본문으로]
  6. 연꽃 따위가 아래로 향한 모양(模樣). 또는 그 무늬 [본문으로]
  7. 연꽃 따위가 아래로 향한 모양(模樣). 또는 그 무늬 [본문으로]
  8. 전법륜인(轉法輪印) 이라고도 한다. 부처의 설법은 이상적인 제왕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윤보(輪寶)로써 적을 굴복시키듯 법으로 일체 중생의 번뇌를 제거하므로 전법륜(轉法輪)이라 한다. 전법륜인은 이때 부처님이 하신 손 모양으로, 양손을 가슴까지 올려 엄지와 장지 끝을 서로 맞댄 후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펴진 마지막 두 손가락 끝을 오른쪽 손목에 대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형태이다. [본문으로]
  9. 승기지와 부견의를 봉합(縫合)하고 옷섶을 단, 중의 옷. 상반신을 덮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걸친다. [본문으로]
Posted by soul